뭔 소리냐고?
얘기는 이렇다.
청계, 시청광장에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시간이 됐다 싶으면 삼삼오오 일어나 거리로 나선다.
이제 7시 촛불문화제, 10시 거리행진이 하루 스케줄이 된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쇠고기수입 고시를 밀어부친 정부에 맞서서
국민들이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사이 늦은 약속을 마치고 귀하라는 길에 종로를 지나다가
거리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어제도 캐스팅 때문에 매니저를 만났고
집에 오는 길에 후배들이 잠깐 얼굴이라도 보자고 해서
인사동에 나갔다가 거리시위에 참여했었다.
어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외쳤더랬는데
이른바 386으로 불리는 40대 중년인 내게
이번 촛불문화제와 거리시위는 여전히 새롭다.
2008. 5. 29. 밤 11시.
이제는 중년이 되어 머라가 희끗희끗한 후배들이 나를 그리워한다면서 인사동으로 불러냈다.
이미 술을 조금 들이킨 상태였던 녀석들(아직도 내게는 귀여운? 후배들이다)은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요즘 연출하고 있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얘기며
영화계 돌아가는 얘기며
며칠 전에 새로 임명된 영화진흥위원장 얘기 등등을 물어왔다.
그러다가 화제는 자연스럽게
2MB, 쇠고기 문제로 모아졌다.
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가 촛불문화제에 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신모감독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기 너머의 신감독은 "광화문 4거리로 오라"고 우리를 꼬드겼다.
나는 맥주를 두어잔 정도만 마신 거라 상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술을 좀 마신 상태라서
거리시위하는 시민들께 누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신감독도 보고 싶고
또 거리시위에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광화문까지 걸었다.
다행히 걸으면서 보니 후배들은 술이 많이 취한 상태들은 아닌 것 같았다.
2008. 5. 30. 0시.
광화문 4거리에는 늦은 시간(혹은 아주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민들이 무척 많았다.
10대들은 거의 귀가한 상태였고
20대, 30대, 4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학교로 회사로 가야할 사람들이지만
쇠고기 고시를 강행한 정부에 항의하는 사람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은 듯 싶었다.
여기 저기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은 선두와 후미 구분이 없었고
정부와 경찰 등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배후도 누군지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테넷에서 누리꾼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시위 현장에 한번 만 나와 보면
배후 세력 운운은 말도 안 되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란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지도부가 없으니 시위는 질서 정연하지 않았다.
탄핵반대 집회 때나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때 등
대규모 시위 대마다 등장했던 방송차량도 흔한 메가폰도 보이지 않았다.
대열은 흐트러질 때도 있고
다시 질서를 유지하기도 했다.
난 종로 쪽으로 가서 대열을 지켜 봤는데,
지나가던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합류하기도 했고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동조하기도 했다.
자주 나온다는 시민들에게 물으니
시위가 아니라 월드컵 응원 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시위가 축제와 같다는 얘긴데,
8, 90년대 처럼 목숨 걸고 하는 게 아니면서
이처럼 자신들의 뜻을 정확하고 힘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2008. 5. 30. 1시.
사람들이 더 불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이 줄지도 않았다.
종로 쪽에서 광화문 쪽으로 다시 이동하다가 대열 중간에 끼었는데,
앞족에서는 "이명박 탄핵!" 구호를
그리고 뒤에서는 "고시 철회! 협상 무효!"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에 딱 끼어 있던 내가 듣기로는 그 구호들이 서로 섞이면서
"탄핵! 철회!"로 들리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때로는 "민주시민 물러가라!"가 되기도 했다.
"민주시민 함께 해요"와 "이명박은 물러가라"가 합쳐져 만들어낸 합창이었다.
의도와 전혀 다른 섞임이었지만 뭐 어떠랴.ㅎㅎ
그랬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구호가 섞여도 상관 없다 있는 힘껏 외치면 그만이다.
왜?
듣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듣기 때문이다.
2008. 5. 30. 2시.
후배 녀석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 갔다.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경찰은 오히려 더 늘었는지 모른다.
경찰들이 사람들은 인도로 밀어 부치고 있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온 사람들로 보이는 군복 입은 젊은이들이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다칠새라 동분 서주하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밀리고 밀려 모두 인도로 올라 섰다.
전경들이 전해 준 얘기로는
오늘은 연행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대규모 연행 이후에 여론이 나빠졌다는 것을 아는 걸까?
어떤 여자분이 나를 알아 보고는 "소소만 화이팅!'"을 외치고 지나갔다.
헉, 열심히 구호를 외쳐야 겠다.
2008. 5. 30. 3시.
어떤 아저씨(나와 비슷한)가 빵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 돌린다.
야식이란다.
어, 이런 거로군.
나도 하나 받았다.
그 아저씨가 사 온 빵이 금새 동이 났고 받은 사람보다는 못받은 사람이 더 많았다.
다른 사람이 벌떡 일어나 돈을 걷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돈을 꺼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몇십만원이 바로 모였다.
이야, 감동이다.
그래, 거리로 나오길 잘했다.
김밥을 사러 간다며 남자분과 여자분이 총총히 떠났다.
어떤 분이 아는채를 한다.
'우리학교' 팬카페 운영진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오늘 2만원 어치의 초와 종이컵을 사들고 나와서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초를 사는데 보태라면서 시민들이 거두어 준 55만원을 보여 주었다.
50만워 넘는 돈으로 초를 사면 어떻게 운반해얄지 걱정이라는 그를 보면서 또 감동이 밀려 온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대규모 시위를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그 돈이 어디서 났겠느냐며 배후설을 거론하지만 그 돈은 이렇게 시민들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었다.
수첩에 무얼 꼼꼼하게 적길래 물었더니
수이;ㅂ, 지출을 기록했다가
나중에 미친소닷넷에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의 양심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훈훈하다.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즉석에서 자유발언 시간을 만들어 낸다.
이것도 예정된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럽다.
2008. 5. 30. 4시
자유발언은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나와서 즉석 연설 혹은 발언을 하는 것도 내게는 새롭다.
어떤 이는 어머니 얘기를 하고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라며 '찔래꽃'을 부른다.
뽕짝 노래 '찔래꽃' 말이다.
찔래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이런 가사의.
1 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야식을 사러 간다던 사람들이 돌아오질 않았다.
"혹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말하자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하면서 나를 때묻은 중년이라도 되는양 바라 본다.
"주엽에 편의점이 쎄고 쎘는데 아직가지 오지 않는 걸 보면 내 예감이 맞다"고 했지만
"아까도 초가 떨어져서 초를 사러 갔는데 주위에는 초가 동이나서 1시간 넘게 걸렸다"며 "기다리면 온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난 여전히 미심쩍다.
10분이 더 지났을까?
김밥을 사러 갔던 남자분이 손에 비닐 봉투를 잔뜩 들고 나타났다.
그 안에는 따끈한 김밥이 가득 들어 있다.
따뜻한 걸 사기 위해 멀리 다녀왔노라며 어서들 드시라고 나눠 준다.
얼굴이 벌개진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때묻은 중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 10분 뒤 여자분도 손에 김밥 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김밥을 나눠주는 그녀에게 잠시나마 당신을 의심했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땀을 훔친다.
부끄럽다.
2008. 5. 30. 5시.
어느새 날이 밝고 첫차가 다니는 시간이 되었다.
쓰레기 봉투를 들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또한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시간이 되면 촛불을 켜고, 거리를 행진하고 다시 인도로 옮겼다가 또 광장에 모여 토론을 하고 야식도 먹고 청소를 하는 것으로 시위를 아니 축제같은 한밤의 행사를 보내고 있었다.
첫차가 다니는 시간이라며 학교나 회사에 가실 분들은 어서 집으로 가라는 안내를 한다.
나도 일어 섰다.
집으로 돌아 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발걸음이 가벼운 건 감동을 받아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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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아자!
2008/05/31 07:34어제 저녁에 학교 수련회를 다녀오고 kbs 소비자 고발을 보다가 자연스레 뉴스를 보게되었는데 시위관련된 뉴스에서 김조광수님을 잠깐 본 것 같아요. ^^
2008/05/31 15:04네, 그랬다고 들었어요. ㅎㅎ
2008/06/01 11:01다들 힘내시고 다치지 않으시도록 조심하시길... 아자! 홧팅!
2008/06/02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