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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영화사 청년필름 대표 겸 제작자로 활동해온 김조광수가 감독으로 또 한 번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이하 <소소만>)는 버스에서 만난 두 소년이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과정을 ‘샤방샤방’하게 그려낸 단편 퀴어영화. 작품 개봉을 앞두고 행복한 표정으로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인 그를 만났다.

FILM2.0 영화가 정말 ‘샤방샤방’하다. 청년필름에서 제작했던 <후회하지 않아>와는 또 다른 느낌인데?

김조광수 감독 그간 나온 한국 퀴어영화들이 대부분 어둡고 우울했다. 이제는 밝고 명랑한 퀴어영화도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본다. <소소만>이 국내에서 퀴어영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신호탄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FILM2.0 이젠 동성애라는 화두 자체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호불호의 문제가 된 것 같다.

김조광수 감독 이번에 개봉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2년 전 <후회하지 않아> 때는 주변에서 대놓고 퀴어로 가면 흥행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근데 지금 <앤티크>는 정확한 퀴어영화가 아님에도 퀴어임을 내세워 마케팅을 하고 있지 않나. <왕의 남자>나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영화, 드라마들이 등장하면서 퀴어에 우호적인 관객들이 늘어난 것 같다.

FILM2.0 아까 기자회견 할 때 보니까 <앤티크>는 ‘가짜 퀴어’라고 말하던데?

김조광수 감독 민규동 감독이랑 친해서 그냥 편하게 얘기한 거다.(웃음) 영화는 아직 못 봤는데 원작 만화를 워낙 좋아해서 기대가 된다. 바쁜 거 다 지나면 빨리 극장가서 보고 싶다.

FILM2.0 그나저나 10년차 제작자가 감독 데뷔라니, 무슨 심경의 변화인가?

김조광수 감독 10편 정도의 작품을 만들면서 제작자로서 갈증을 느낄 때가 많았다. 기획했던 영화가 작가와 감독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갈 때, 그래서 나중에 극장에 걸린 영화가 내 생각과 많이 달라졌을 때, 후배 감독들이 “에이, 형은 제작자니까 잘 모르잖아”라고 핀잔 줄 때…(웃음) 연출 경험이 있으면 나도 작업할 때 좀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FILM2.0 은근히 서러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김조광수 감독 같이 작업한 감독들이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김석윤 감독 빼곤 다 후배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촬영장에 가면 다들 그렇게 부담스러워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촬영장에서 할 일이 없어졌고, 그러면서 촬영장에 잘 안 가게 됐다. 어느 순간 ‘내가 영화 현장의 재미를 못 느끼게 됐구나. 이거 되게 불행한 건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이번에 연출을 하다 보니 현장이 대단히 재밌게 느껴졌다. 내가 상상했던 장면이 만들어졌을 때의 쾌감과 잘 안 만들어졌을 때의 좌절감이 왔다 갔다 하면서. 이번 영화로 연출에 너무 맛을 들인 거 같아 걱정이다. 후배들 디렉터스 체어 뺏어서 내가 앉고 그럴까 봐.

FILM2.0 메이킹 필름에서 주인공 ‘민수’ 역의 김혜성이 당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닮아서 캐스팅했다는 말에 충격받았다. 본인 어린 시절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말이지.

김조광수 감독 사람들이 하도 안 믿어서…(웃음) (김)혜성 군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배우다. 여리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게 나랑 닮지 않지 않았나? (이)현진 군은 드라마에서 처음 봤는데 다부진 체격과 상반되는 천진난만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둘 다 완전히 사심 캐스팅이다.

FILM2.0 버스에서 남학생과 눈 맞은 이야기는 순전히 본인의 경험이라고?

김조광수 감독 시나리오 단계에서 내 경험을 잘 풀어보고자 했는데 그때 생각난 친구가 바로 ‘석이’다. 어릴 때 버스에서 우연히 그 친구와 눈빛을 주고받았는데 내가 내리니까 쫓아 내리고 내가 뛰니까 뒤따라 뛰어오더라. 영화 속 ‘민수’가 바로 나인 셈인데, 광수라는 이름이 ‘샤방’하지 않아서 민수로 바꿨다.

FILM2.0 영화에 나오는 노래 ‘길거리 게이 연애 수칙’의 가사가 정말 재미있더라. 길에서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도 섣불리 대시할 수 없는 동성애자들의 고충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가사는 본인이 직접 쓴 것?

김조광수 감독 ‘G보이스’라는 아마추어 게이 코러스의 단장님한테 대략의 내용을 알려주고 그걸 운율에 맞게 가사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진지한 가사보다는 툭툭 내뱉을 수 있는 가사로 해달라고. 노래는 예지원과 G보이스가 같이 불렀다.

FILM2.0 예지원이 큐피트 옷 입고 사랑의 메신저로 등장하는 장면도 키치적인 재미가 물씬했다.

김조광수 감독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 촬영 당일 연기와 안무를 동시에 소화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때 떠오른 게 예지원이었다. 그 장면에서 예지원이 깃털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면 모든 게 해결되겠구나 싶더라. 춤도 잘 추고 워낙 기본기가 되어 있는 친구라 믿고 부탁했다.

FILM2.0 영화가 예쁘기만 하고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한 반박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던데?

김조광수 감독 그 비판 자체가 편견이다. 밝고 명랑하게 사는 게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수자로서 소수자를 위로하자는 생각으로 왔는데 막상 그런 영화가 아니니까 실망하고 돌아가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아니지 않나. 퀴어영화라고 해서 꼭 현실적일 필요도 없고. ‘퀴어영화는 저러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건 색안경인 것 같다.

FILM2.0 예상 관객 인원은 몇 명인가? <후회하지 않아> 때는 5만 명이었는데 근사치까지 달성했다.

김조광수 감독 목표가 만 명이다. 물론 단편으론 가당치 않은 스코어지만 국내에 퀴어 팬들이 적어도 몇 만 명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이 영화가 잘돼서 대한민국에서도 독립영화가 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FILM2.0 단편영화로는 이례적인 극장 개봉이다.

김조광수 감독 <후회하지 않아>의 후광이 컸다. 예전에는 내가 먼저 극장 쪽에 전화해서 우리 영화 틀어달라고 조르면 그쪽에서 반신반의하다가 수락하는 식이었는데 이번에는 극장 쪽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특히 <후회하지 않아> 때 수익을 본 지방 극장들이 다시 콜을 해줘서 배급이 순조로웠다.

FILM2.0 메이킹 필름을 붙여서 상영하는 건 애초에 기획된 거였나?

김조광수 감독 그렇다. 단편 하나로 극장 개봉을 해야 한다고 하면 적어도 러닝타임이 30분 이상은 되어야 할 텐데 길이를 늘리자니 좀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떠올린 게 메이킹 필름이다. 퀴어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FILM2.0 <소소만>의 타깃은 아무래도 동인녀(미소년 동성애에 호감을 가지는 여자들을 지칭하는 말)일 듯?

김조광수 감독 퀴어영화 관객 중엔 게이보다 동인녀가 더 많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동인녀들이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고,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청소년 동성애자들까지 아우르고 싶었다. 그들이 이걸 보고 자신이 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힘을 얻었으면 했다. 메이킹 필름도 사실 그래서 넣은 거다. 나를 보고 대중 앞에서 커밍아웃 한 사람도 저렇게 밝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앞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그런 친구들과 더 많이 대화해보고 싶다.

FILM2.0 엔딩 크레딧의 반을 잠식한 소년단 256명의 정체는 대체 뭔가?

김조광수 감독 소년단은 <소소만>을 후원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영화를 만들 때 제작비가 부족해서 모금을 했는데 거기에 참여한 256명의 이름을 엔딩 크레딧에 넣었다. 내 돈 200만 원, 소년단 후원금 450만 원 해서 총 650만 원으로 찍었다.

FILM2.0 그렇게 발 벗고 나서주는 팬들이 있어서 참 뿌듯하겠다.

김조광수 감독 그분들이 검색어 순위도 올려주고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홍보도 해주니까 우리로선 그게 참 큰 힘이다. 최근에는 <앤티크>하고 <소소만>하고 포스트 수를 비교해봤는데 <소소만>이 월등히 많더라. ‘이게 바로 조직화된 동인녀의 힘이구나!’ 했다.(웃음)

FILM2.0 <소소만>은 ‘친구사이’라는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를 알리기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김조광수 감독 처음부터 이건 청년필름이 제작하는 영화가 아니라 내가 속한 게이 단체가 제작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친구사이가 생긴 지 벌써 14년이 됐는데 아직 모르는 분들이 꽤 있어서 좀 알릴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게이 단체가 그저 권리 투쟁만 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유쾌한 작업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FILM2.0 청년필름 얘기 좀 해보자. 올해로 창립 10주년인데 대표로서 소감이 어떤가?

김조광수 감독 10년 동안 경제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다. 관객을 많이 만난 영화가 <해피엔드> 빼놓고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요즘 관객들이 청년필름 영화라고 하면 아주 후지진 않다고 생각해주니까 딴에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후회하지 않아>를 기점으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번갈아가며 만들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도 한국에서 조금 특별한 영화사가 된 것 같다. 앞으로의 10년을 더 잘 꾸려야지.

FILM2.0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청년필름 10주년 영화제’를 열자고 제안했다던데?

김조광수 감독 안 그래도 다음 달 초에 열릴 예정이다. 처음 제의받았을 땐 별로 큰 성과를 낸 것도 아닌데 너무 요란 떠는 거 같아서 걱정스러웠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게 우리 회사가 새로운 10년을 다짐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더라. 그동안 제작했던 장편 10편 하고 그 감독들이 만든 단편 10편 합쳐서 총 20편을 상영할 계획이다. 청년필름에서 데뷔 준비 중인 감독들 단편도 묶어서 한 섹션 만들고.

FILM2.0 그동안 제작한 작품들 중 가장 아끼는 작품과 아쉬웠던 작품을 하나씩 꼽는다면?

김조광수 감독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와니와 준하>, 제일 아쉬운 영화는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은 우리가 좀 더 잘했다면 그거보단 관객이 더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뿌듯한 영화는 <후회하지 않아>다. 내 정체성과도 잘 맞았고, 독립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는 면에서도 오랫동안 기념하고픈 작품이다.

FILM2.0 내년에는 어떤 작품들이 제작될 예정인가?

김조광수 감독 올해는 활동이 좀 미진한 편이었다. <소소만> 말고는 개봉된 작품이 없으니까. 대신 내년에는 3편 정도 개봉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편수로만 따지면 거의 메이저다.(웃음) 이송희일 감독 영화는 이미 촬영이 끝난 상태고, 그 외에도 캐스팅을 끝낸 영화가 두 편 정도 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1년에 2~3편 정도인데 계속 그 정도만 꾸준히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FILM2.0 앞으로도 계속 퀴어영화에 천착할 작정인가?

김조광수 감독 물론. 내가 가진 정체성과 내가 하는 작업이 딱 만나는 일 아닌가. 이번에는 멜로였으니까 다음에는 호러나 스릴러 같은, 보다 확실한 장르의 퀴어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FILM2.0 차기작은 <장화, 홍련>의 퀴어 버전이라고 들었다.

김조광수 감독 엄마 아빠가 재혼하면서 형제가 된 두 소년의 사랑 이야기다. 여기서 엄마는 자기 아들에 대해 굉장히 집착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보통 모성애는 굉장히 숭고하다고 하면서 동성애는 해선 안 되는 사랑이라고 못 박지 않나. 그게 이 영화에선 반대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 잘못하면 자녀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호러라는 외피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사진 백지연

강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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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대로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세요. 아자 아자!

    2008/11/24 14:48
  2. 洪異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세요~!!!

    2008/11/24 15:07
  3. 유랑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다시 느끼는 거지만... 역시 사진도 예쁘게 잘 나오시구요 ㅎㅎ
    멋져요>_<ㅋㅋㅋ

    2008/11/2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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