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느끼는 거지만 캐스팅 과정은 짝짓기 프로그램의 흐름과 흡사하다.
캐스팅은 말 그대로 캐스트를 섭외하는 것, 시나리오에 형상화 된 인물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아 출연을 확정 짓는 일이다.
전혀 비슷할 것 같지가 않다고?
속단은 금물.
내 얘기를 좀 들어보라.
짝짓기 프로그램의 진행 순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맘에 드는 이상형의 짝을 고르려면 먼저 내가 원하는 타입을 정하는 것을 기본(시나리오와 인물 석)으로 → 스튜디오에 나온 상대 중에 호감도 순위를 정하고(구체적인 배우를 대상으로 후보 선정) → 출연진의 자기 소개 및 장기 자랑 순서에서 탐색전을 벌이고(후보들을 대상으로 오디션 진행) → 사랑의 짝대기 버튼을 누르는(오디션을 바탕으로 최종 선정)것이다.
어떤가?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도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만 더 읽어 보시라.
아무나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없듯이 아무 배우나 캐스팅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만나고 싶다고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만난다고 해서 모두가 짝이 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또 대개의 사랑이 그렇듯 엇갈린 사랑의 짝대기 때문에 괴로워질 때가 더 많다.
일방적인 구애는 좋게 발전을 해도 짝사랑 혹은 외사랑으로 가지만 나쁘게 키워지면 영락없이 스토커가 된다.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커플이 될 수 없듯이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스타 배우에게 줄 서 있는 시나리오는 때로 수백 편에 달하고 그 중에 한 두 편만 낙점(?)을 받아 촬영을 하게 된다.
킹(혹은 퀸)카를 향한 열렬한 구애 행렬과 비슷하다.
물론 감독이 스타(수백만 혹은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 감독이거나 영화제에서 수상한 감독들)일 경우에도 양상은 같다.
스타 감독의 시나리오는 다른 경쟁작들을 제치고 맨 먼저 올려지고 수많은 배우들의 해바라기를 받는다.
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바로 사랑의 짝대기!
아무리 짝대기를 많이 받는다 해도 그 짝대기가 서로를 동시에 향하지 않으면 꽝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이도 나를 원해야 완성되는 사랑의 짝대기.
캐스팅은 바로 짝짓기 프로그램의 짝대기와 같다는 말씀.
그 짝대기를 주고받기 위해 오늘도 시나리오를 보내고 배우들을 만났다.
요즘 캐스팅을 하고 있는 영화는 나의 두 번째 연출작인 <친구사이?>라는 중편영화다.
20대 게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찐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 퀴어멜로영화인데,
얼마 전 무비위크에 캐스팅이 완료되어 곧 촬영에 들어간다고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캐스팅을 하고 있냐고?
그러게 말이다.
기사대로라면 벌써 크랭크 인을 했어야 했고 오늘도 촬영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촬영은커녕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어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맞다.
짐작하는 대로다.
꽝! 캐스팅이 불발됐다.
출연을 약속한 배우가 있었고 그래서 구체적인 촬영 계획을 잡고 보도자료를 릴리즈 했지만 촬영을 며칠 앞두고 배우 쪽에서 출연을 번복했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대한민국에서 퀴어영화를 찍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남자 배우들이 퀴어영화 그것도 찐한 러브 장면이 있는 퀴어영화를 꺼리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긴 했다.
그래서 정말 많은 배우들을 오디션 했다.
지금까지 만난 배우들만 백 명은 족히 넘는 것 같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구애를 했고 결국 성공했지만 막상 예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망연자실 퍼질러 앉은 꼴이 되었다.
“게이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게 요즘 젊은 여성들의 로망 중 하나라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보수공화국인 모양이다.
이번에 캐스팅이 불발에 그치게 된 건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 에이, 농담도!
배우의 부모님이 “동성애영화에 출연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단다.
내가 직접 부모님을 설득해 보겠노라고 전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퀴어영화를 찍으려면 배우는 물론 그 부모님까지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명심해야겠다.
그나마 촬영 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심기일전하여 다시금 구애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조건 안 좋은(퀴어라서) 데다가 흠집(이미 파혼을 당했다고 소문이 퍼졌으니) 좋은 짝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걸로 예상된다. ㅠ.ㅠ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이별을 해야한다?
이건 뭐, 너무 진부한 스토리인 걸?
역시 캐스팅은 짝짓기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빨리 영화를 찍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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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 나라가 아직은 많이 보수적인 거 같아요
2009/04/01 09:31그 틀을 깨기가 아무래도 힘들겠죠
그것도 우리부모님 대 라면 더더욱 ㅜㅜㅜㅜㅜ
짝짓기프로그램도 매주 출연진 바뀌잖아요
새로운 킹카가 등장할꺼예요!
감독님 너무 실망하시지 마시고 꼭 좋은 배우 캐스팅 하세요^^
여러가지 힘드신 점이 많겠지만, 얼른 캐스팅 잘되서 영화찍으셨음 좋겠어요. 힘내세요!
2009/04/01 12:03우왕 사진 굿~!!
2009/04/02 06:04홧팅 입니다..
2009/04/10 02:09저희들이 있잔아요 ㅋㅋㅋ
더 좋은 배우 만날꺼에요 화이팅:-)
2009/04/15 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