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link | 러닝타임이 짧다. 72분인데 20분 정도 더 길었으면 어떨까 싶었다. 에로영화 현장의 비애나 감독으로서 느끼는 애로사항들, 여배우 캐릭터 등에 대한 내용이 더 있었으면 했다.
공자관 | 그러면 회차를 더 줘야지. 제작비도 더 필요할 테고. <색화동>은 순제작비 약 1억2천만 원의 예산으로 12회차 만에 찍은 영화다. 에로영화 찍을 때는 많이 들여봐야 1,500~2,000만 원 정도였으니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셈이다.
지금까지 찍은 에로영화는 총 몇 편인가?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12~14편 정도 되는 것 같다. 웹용 콘텐츠를 제외한 극영화만 센 숫자다. 웹용 콘텐츠는 15~20분 정도, 길어야 30분이다. 나중에 웹용 콘텐츠를 모아서 비디오로 출시하는 일도 있었다. 출시작으로 따지면 20편 정도 되는 것 같다.
클릭엔터테인먼트에서 감독으로 일했던 기간은?
조감독을 1년 정도 했고, 감독은 1년 반 정도 했다.
클릭엔터테인먼트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개점휴업 상태다. 2년 전부터 제작되는 작품이 없다. 에로영화의 산업 기반이 무너진 상태라 가장 잘 나갔던 회사인 클릭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출시작을 내면 무조건 손해다. 모바일 용으로 만드는 곳이 있다고 들었지만, 기존의 에로영화 제작사들은 거의 출시작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단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라고 들었다. 대학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유지태와 동기다. 하지만 연락 안 된 지 어언 5년…. (웃음) 대학교 다닐 때는 영화를 좋아하는 문학청년에 가까웠다. 모든 걸 학문적으로 접근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게 반항아 기질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알랭 레네 같은 감독들을 좋아하던 시네필이면서도 B급영화나 비주류영화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친구들한테 “난 포르노도 찍고 막 나가는 B급영화도 찍을 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군대 다녀와서 에로영화 회사 들어갈 때 친구들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더라. (웃음)
제대 후 영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건가?
그렇다. 군대 다녀와서 보니 영화가 급격하게 산업화되어 가고 있었다. 나 역시 현실적으로 변하다 보니 직업으로서 영화 일을 생각하게 됐다. 대중과 접점이 넓은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는 단편을 많이 만들었나?
학교 다닐 때 직접 연출한 단편영화는 딱 한 편이다. 김현영 작가의 [냉장고]라는 소설을 각색한 25분짜리 비디오 영화였다.
클릭엔터테인먼트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4학년 1학기 때 들어갔다. 내겐 에로영화의 비전이 명확하게 보였다. 에로영화가 비주류라 해도 그 안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기만 한다면 결국에는 사람들이 날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충무로에 가서 밑바닥부터 배우고 싶은 욕심이 내겐 없었다.
일본의 수오 마사유키나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감독들은 핑크영화에서 주류 영화계로 진입한 대표적인 예다. 혹시 그런 사실이 힘이 되기도 했나?
그렇다. 영화잡지에서 읽었던 일본의 핑크영화 산업이 내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결국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클릭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던 당시 상황이 <색화동>에서 주인공이 ‘온니포맨’에 입사하는 과정과 비슷한가?
클릭에는 2001년 3월에 들어갔다. 내가 촬영을 맡고 친구가 연출한 단편영화를 비디오로 옮겨서 들고 갔다. 내심 필름으로 찍었으니 놀랄 것이라 생각하고 영화사 대표와 만났다. 그런데 “화질은 저게 뭐냐?” “촬영은 왜 저러냐”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속으로 약간 기분이 상해 있는데 비디오를 세 개 주더니 감상문을 써오라더라. 나오면서 ‘내가 잠깐 미쳤나 보다’ 생각하고 그냥 학교에 다녔다. 그러더니 3~4일 후에 왜 안 오냐고 전화가 왔다. 감상문을 쓰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고 거짓말을 둘러댔더니 감상문은 천천히 쓰고 일단 회사로 오라더라. 1주일 남겨놓고 조감독 일을 시키니 버거웠다. <색화동>에 나온 것처럼 하지는 않았지만, 다음날 바로 시나리오 리딩에 들어가 당황하기도 했다. 스케줄을 짜는 데 정말 하루에 30개 신을 촬영해야 했다. 컷으로 30개가 아니라 신이 30개였다. 첫 영화를 4박 5일 동안 총 5회차로 찍었다. 서너 작품 하고 나니 총 회차가 4회차로 줄었고 얼마 안 지나서 바로 3회차로 줄었다. 그만큼 여건이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색화동>의 황감독처럼 일정에 쫓기다 보면 중요한 장면도 찍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나?
황감독은 조금 과장된 캐릭터다. 실제로는 예정된 장면을 못 찍게 되더라도 한참 고민해서 결정한다. 내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에로영화 스탭들을 약간 희화화해서 묘사했다. 영화 속 모습을 실제라고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에로영화 같이 찍던 스탭들에게 욕 먹을지도 모르니까. (웃음)
에로영화 현장에 대학 영화과 출신이 많나?
의외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하다 보니 에로영화 스탭들도 대학마다 계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표면에 드러난 건 아마 내가 처음일 거다.
에로영화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현장 경험 후 느낀 생각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많이 다르다. 현장에 가면 감독의 연출 의도 같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2회차 내에 영화 한 편을 다 찍어야 하니까. 처음엔 나도 얕보고 갔다. 하지만 막상 연출을 맡게 되니까 압박으로 다가오더라. 내가 잘 못 찍어서 비디오 판매가 안 되면 내 밥줄이 끊기는 건 물론이고 회사에도 손해가 되니까. 처음에는 너무 웰메이드에 집착하며 찍었다. 그걸 벗어나기 힘들었다. 지금도 감독으로서 내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웰메이드에 대한 집착이나 영화문법에 대한 집착 같은 걸 깨고 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색화동>도 그걸 못 버린 티가 많이 난다.
클릭에서의 첫 연출작은 어땠나?
조감독으로 15~16편 정도 했다. 첫 연출작은 과욕을 부리다 망했다. 제작비가 2회차 즉 이틀 찍을 분량으로 줄어서 내가 이틀 만에 다 찍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제작사 대표나 선배 감독이 내게 첫 영화이니까 3일 동안 찍으라고 했는데도 오기로 밀고 나갔다. 결국 이틀이 넘어갔는데도 하루 찍어야 할 분량이 남은 거다. 배우들에게 반나절만 더 찍겠다고 빌었다. 솔직히 배우들이 예술을 하는 것도 아니라 계약에 민감하다. 그러니 얼마나 싫겠나. 다행히 친하게 지내는 배우들이고 첫 영화라 많이 도와줬다. 그래도 작품이 잘 나올 리가 있나. 내가 봐도 창피할 정도였다. 제작자 평은 ‘대학교 1학년생이 수업 시간에 연습 삼아 찍은 것 같은 아마추어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절치부심해서 두 번째 작품을 찍었다. 다행히 그 작품이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야망>이다. 클릭 전속 배우였던 이메일과 하소연이 출연했던 영화다.

클릭을 떠난 후 잠시 케이블TV용 시트콤을 연출했다. 에로 업계를 떠나 연출을 해보니 어떻든가?
원래는 15억 원짜리 옴니버스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가 엎어지고 제의가 들어와서 한 게 시트콤 <밥만 먹고 못살아>였다. 순전히 돈 때문에 한 작업이다. 당시 스탭들은 대부분 충무로 출신이었는데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투철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었다. 충무로 출신들은 무척 느리다. 늘 스피디한 작업만 해왔던 사람이라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해도 스탭들은 될 때까지 다시 하려고 했다. 사실 그게 맞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15차를 쉬는 날 없이 계속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답답했다. 시트콤 현장에서는 내가 황감독이었다. 충무로 출신 스탭들의 장점은 감독의 위치는 존중해준다는 점이었다. 에로영화 출신이지만 무시당하고 일한 적은 없다.
<색화동>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트콤 끝나고 4~5개월 놀면서 클릭 사장을 자주 만났다. 회사가 개점휴업 상태니 이런 난관을 타개할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이야기를 소재로 케이블TV와 미니시리즈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제시한 제작비 규모가 너무 작아서 우리가 직접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한 거다.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됐나? 에로배우로 나오는 사빈 역으로 유명한 에로배우를 캐스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완전히 저예산으로 할 거면 다 에로배우를 쓰거나 아니면 다 일반배우를 쓰거나. 연기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면 이 영화는 끝이라는 생각에 후자를 택했다. 애초부터 황감독은 시트콤 촬영 때 알게 된 김동수 선배를 염두에 뒀다. 나머지 배우들은 스탭들의 인맥으로 끌어왔다. 가장 힘든 건 여배우였다. 노출이 많으니까. 무시도 많이 받고 여러 모로 많이 씁쓸했다. 잘 알려진 배우들에게도 연락을 했고, 신인 배우나 배우 지망생들과도 연락을 했지만 다들 애초부터 무시하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경우도 막판에 거절했다. 사실 촬영 전날까지 출연하기로 돼 있던 연극영화과 학생이 있었다. 출연료로 회유를 해서 거의 결정이 된 상태였는데 촬영 전날 못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예전에 오디션에 지원했던 배우들을 급하게 다시 만나서 정소진을 캐스팅하게 됐다.
에로영화 현장을 다룬다는 점에서 노출을 피할 수 없었을 텐데 처음 계획으로는 어느 정도 수위까지 묘사할 생각이었나?
감독은 누구나 결정하느라 고민이 많을 것이다. 영화 속 영화 장면은 노출이 조금 있어도 상관이 없는데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를 묘사할 때는 수위를 정하느라 힘들었다. 특히 주인공 진규와 여배우 사빈이 함께 자는 부분은 노출 장면을 찍어 놓고도 잘라 냈다. 속옷을 입고 서로 애무하는 정도의 노출이었지만, 이 영화가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진규와 사빈의 베드신이 스토리 전개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에로영화가 아니라 에로영화에 대한 영화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나?
자세한 시놉시스를 써 놓은 로맨틱코미디 한 편이 있다. <색화동>의 진규를 다시 주인공으로 해서 다른 내용의 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케이블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베드신이 영화의 텍스트에 어울리는 제대로 된 에로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사진_류관희(스튜디오 아카이브)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 출처 : http://magazine.ticketlink.co.kr/all/view.jsp?s_ViewPage=9225&s_BasicCd=110&s_BrdCd=A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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