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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10년만 하라.” 딱 10년만 하면 뭔가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아 후배들, 특히 영화 일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자주 건네는 말이다. 밑도 끝도 없이 왜 10년이냐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에 비춘 것도 있지만 그저 내 경험에 기댄 것이 크다. 특별하지 않은 나도 10년 넘게 영화판에 있었더니 어느새 장편 영화 열 편을 제작한 프로듀서가 되지 않았나. 그러니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여,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년만. 10년을 하다 보면 노하우도 생기고 인프라도 생기고 스킬(영어 쓴다고 재수없다 욕해도 어쩔 수가 없다. 마땅한 우리 말을 찾을 수가 없다. ㅠ.ㅠ)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전문가가 되어 있다. 물론 그 10년 동안 꾸준히, 적어도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 호락호락한 일은 절대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돕는 것만으로도 기뻤었는데 언제부턴가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제작자가 되었고 겸임교수가 되었고 꼴랑 단편 하나 만든 것뿐이지만 감독도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길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이른바 연예인 놀이(내가 붙인 이름이다. 민망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사인해 달라는 이들도 있다)를 하기도 한다. 지난 겨울에는 ‘청년필름 10주년 영화제’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따져보니 광수, 정말 용 됐다. 그것 보라! 내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다시 말하지만 “10년만 하라.”

10년간 꾸준히 한 일을 떠올리다 생각난 건데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영화 일은 아니고 퀴어 퍼레이드다. 대학로에서 시작된 퀴어 퍼레이드가 올해로 열 번째를 맞았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성 소수자들은 벽장문을 열고 나와 서울의 한복판에서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거리낌 없이 외치며 행진을 벌여왔다. 대학로에서 홍대로, 그리고 이태원을 지나 종로와 청계천까지. 장소는 바뀌었지만 퍼레이드가 열리는 그 하루만큼은 당당하고 즐거운 퀴어들에 의해 서울이 무지갯빛으로 물들곤 했다. 시작할 땐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뉴욕도 도쿄도 베를린도 아닌 서울에서 퀴어들의 행진이 계속될 거라고는. 때로는 사람들의 삿대질과 비아냥,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들어가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코들고 걷기를 꼬박 10년 했다.

그 사이 이뤄낸 것도 많다. 첫해 대학로를 걸었던 사람이 50명이었는데, 열 번째 청계천을 행진한 사람은 1,500명(남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차도에 내려서지 못하고 인도를 걷는 소심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2,000명을 훌쩍 넘을 거라는 계산도 있지만)이었다. 10년 만에 30배의 성장률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대놓고 지팡이 휘두르던 할아버지들은 사라지고 박수와 환호는 물론, 대열에 들어와 같이 춤추는 사람들(그 통에 대열이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그게 퀴어 퍼레이드의 자랑이라면 자랑인데)이 점점 늘어간다.

동성애 인권 단체 활동을 중심으로 시작된 행사는 어느새 성 소수자들의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올해는 청소년 성 소수자들이 따로 부스를 만들고 전시와 공연을 펼쳐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다. 정당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당 내에 성소수자위원회를 설치했고 퍼레이드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홍석천과 하리수가 성 소수자 연예인으로 활약 중이고, 대중문화에서는 동성애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일부 20대 여자들에게 게이 친구는 ‘명품 핸드백보다 더 갖고 싶은 것’으로 자리 잡기도 했으니 이만하면 ‘강산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조광수 개인에게도 변화는 많다. 방송에 나와 “나는 동성애자입니다”라고 커밍아웃을 했고 퀴어 영화를 제작했으며 감독이 되었다. 이제 웬만한 영화 행사에는 5년차 애인을 대동한다. 난 더 이상 남들이 알까 두려워 고개 숙이는 겁쟁이 호모가 아니다. 대로를 활보하는 당당한 게이다. 행복하다. 10년 동안 꾸준히 해온 덕분이다. 그러니 “10년만 하라.”

p.s. 이 글을 쓰는 동안 10년 민주주의의 성과 후퇴를 우려하는 영화인 시국선언에 동참하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그래, 10년을 지켜왔는데,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뒤로 갈 순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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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무비조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꾸준히 10년 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지금 위치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자신의 열의를 가지고 10년동안 계속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전문가 수준이 되어가는 것이겠죠^^

    글 읽고나니 느끼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예종사태부터 시작해서 문화예술을 자신의 눈높이로 다시 재단하려는 사람들이 2009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몸서리쳐집니다.

    문화예술에 우파가 어디 있고 좌파가 어디 있습니까? 문화란 그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판단하고 그 문화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정상인데..

    그 문화 자체를 자신의 눈높이에서 재단하려는 사람들이 설치는 꼴을 보니 가슴에서 울분이 터져 나오는군요...

    보통 문화예술 분야에 족쇄를 채우려고 시도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독재정권 밑에서 설치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요즘입니다.

    2009/06/25 13:30
  2. 응원의마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조광수 대표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납니다.
    이렇게 올바른 생각으로 영화계를 지켜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크고, 믿음도 큽니다.
    부디 끝까지 싸워서 한국영화를 지켜주세요.

    2009/06/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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