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소나기 내린 뒤에 보는 무지개는 대단한 판타지였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도 너무 예뻤지만 푸른 하늘 저 멀리에 떠 있는 모습은 닿을 수 없는 꿈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누구나 무지개 너머에는 희망이 있다는 그런 꿈을 꾸었다. 닿을 수 없는 무지개, 넘을 수 없는 무지개는 동화로 영화로 또 노래로 만들어져 꿈을 더 키워냈다. 공해 때문에 무지개를 볼 수 없게 되면서 꿈도 따라 사라져 가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무지개를 띄웠다. 하늘에 둥둥. 사실은 진짜 무지개는 아니고(설마 그렇게 믿은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무지개 깃발이다. 낚싯대를 깃대 삼아 그 끝에 매달고 높이 올렸다. 하늘 높이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은 연일 벌어지는 촛불 시위 현장에서 무척 인기가 많다. 시위대의 머리 위, 제일 높은 곳에서 날리고 있는 깃발은 주변의 깃발들 중 최고의 색감을 뽐내고 있는지라 어디서 보든지 눈에 확 띄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나 무지개 깃발 밑에 있어.”라며 친구 찾기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한번은 깻잎 머리를 한 촛불소녀 서넛이 내게로 오더니 “아저씨 이 깃발은 뭐예요? 어느 단체에서 왔어요?”라며 묻길래 “동성애자들을 상징하는 거예요.”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촛불소녀 대뜸 “어머, 아저씨 그럼 호모에요?”했다. 엄훠,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모 소리에 깜짝 놀랐는데, 옆에 있던 다른 여학생이 “어머 얘는 무식하게 호모가 뭐니? 동성애자라고 해야 하는 거야. 동성애자.”라고 했다. 그렇게 불쑥 튀어나온 호모는 동성애자로, 성소수자로, 차별 반대로 이어지며 어느새 5분 토론이 되었다.
우리(한국의 동성애자들)가 무지개 깃발을 처음 띄운 게 1997년 노동법 날치기 반대 투쟁 때이니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위 현장에서 보이는 무지개는 낯설기만 한가보다. 촛불이 수십만 개로 늘어난 요즘도 “이 깃발은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꿈의 상징 무지개는 그렇게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에서 성소수자들의 상징이자 인권 교육의 상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무지개가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표식이 된 건 1970년대부터이다. 성소수자들의 상징이 여럿 있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국제적인 인기를 얻어낸 상징은 빨주노초파보 여섯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 깃발이다. 무지개 깃발이 일곱 색이 아니라 여섯 색인 데는 역사가 있다. 1978년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길버트 베이커라는 화가는 지역의 동성애 운동가로부터 동성애 커뮤니티의 상징물로 사용할 수 있는 깃발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올림픽 깃발이 다섯 가지 색깔을 사용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여덟 색(분홍, 빨강, 주황, 노랑, 녹색, 파랑, 남색, 보라)을 이용하여 깃발을 제작했다. 각 색깔들은 섹슈얼리티,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그리고 영혼을 의미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분홍색을 대량으로 염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무지개 깃발은 일곱 색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1978년 11월, 커밍아웃한 게이로서 첫 시의원이 되었던 하비밀크가 저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계기로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힘과 연대를 보여줄 필요성이 제기 되었고 1979년 게이퍼레이드를 하기로 하면서 무지개 깃발을 사용하게 되었다. 퍼레이드 위원회는 남색을 삭제하고, 퍼레이드 구간의 양쪽 길에 세 가지 색깔 씩 나누어 깃발을 설치했다. 그렇게 사용한 여섯 색의 무지개 깃발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어 성소수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앞으로도 무지개 깃발은 하늘 높이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더 아름다워 지는 것 아니겠는가. 혹시 촛불 집회에 나왔다가 무지개 깃발을 보게 되면 그 아래에 와서 연대의 손짓 혹은 눈짓을 보내주면 좋겠다. 세상이 더 아름다와지도록 말이다.
그래서 무지개를 띄웠다. 하늘에 둥둥. 사실은 진짜 무지개는 아니고(설마 그렇게 믿은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무지개 깃발이다. 낚싯대를 깃대 삼아 그 끝에 매달고 높이 올렸다. 하늘 높이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은 연일 벌어지는 촛불 시위 현장에서 무척 인기가 많다. 시위대의 머리 위, 제일 높은 곳에서 날리고 있는 깃발은 주변의 깃발들 중 최고의 색감을 뽐내고 있는지라 어디서 보든지 눈에 확 띄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나 무지개 깃발 밑에 있어.”라며 친구 찾기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한번은 깻잎 머리를 한 촛불소녀 서넛이 내게로 오더니 “아저씨 이 깃발은 뭐예요? 어느 단체에서 왔어요?”라며 묻길래 “동성애자들을 상징하는 거예요.”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촛불소녀 대뜸 “어머, 아저씨 그럼 호모에요?”했다. 엄훠,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모 소리에 깜짝 놀랐는데, 옆에 있던 다른 여학생이 “어머 얘는 무식하게 호모가 뭐니? 동성애자라고 해야 하는 거야. 동성애자.”라고 했다. 그렇게 불쑥 튀어나온 호모는 동성애자로, 성소수자로, 차별 반대로 이어지며 어느새 5분 토론이 되었다.
우리(한국의 동성애자들)가 무지개 깃발을 처음 띄운 게 1997년 노동법 날치기 반대 투쟁 때이니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위 현장에서 보이는 무지개는 낯설기만 한가보다. 촛불이 수십만 개로 늘어난 요즘도 “이 깃발은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꿈의 상징 무지개는 그렇게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에서 성소수자들의 상징이자 인권 교육의 상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무지개가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표식이 된 건 1970년대부터이다. 성소수자들의 상징이 여럿 있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국제적인 인기를 얻어낸 상징은 빨주노초파보 여섯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 깃발이다. 무지개 깃발이 일곱 색이 아니라 여섯 색인 데는 역사가 있다. 1978년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길버트 베이커라는 화가는 지역의 동성애 운동가로부터 동성애 커뮤니티의 상징물로 사용할 수 있는 깃발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올림픽 깃발이 다섯 가지 색깔을 사용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여덟 색(분홍, 빨강, 주황, 노랑, 녹색, 파랑, 남색, 보라)을 이용하여 깃발을 제작했다. 각 색깔들은 섹슈얼리티,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그리고 영혼을 의미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분홍색을 대량으로 염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무지개 깃발은 일곱 색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1978년 11월, 커밍아웃한 게이로서 첫 시의원이 되었던 하비밀크가 저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계기로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힘과 연대를 보여줄 필요성이 제기 되었고 1979년 게이퍼레이드를 하기로 하면서 무지개 깃발을 사용하게 되었다. 퍼레이드 위원회는 남색을 삭제하고, 퍼레이드 구간의 양쪽 길에 세 가지 색깔 씩 나누어 깃발을 설치했다. 그렇게 사용한 여섯 색의 무지개 깃발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어 성소수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앞으로도 무지개 깃발은 하늘 높이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더 아름다워 지는 것 아니겠는가. 혹시 촛불 집회에 나왔다가 무지개 깃발을 보게 되면 그 아래에 와서 연대의 손짓 혹은 눈짓을 보내주면 좋겠다. 세상이 더 아름다와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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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이, 더 많은 희망을 담고 나부겼음 좋겠어요. ^^
2008/06/19 00:17피터님 깃발옆에서 같이 촛불들고 서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흑) 요즘들어 지방에 사는게 더욱 서러워집니다. 퀴어퍼레이드에도 참여못하구...ㅠ_ㅜ;
2008/06/19 01:36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빛깔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오는 날까지... 아자~! ^ㅁ^/
2008/06/19 0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