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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Y 4회

광수의 모든 것/광수이야기 2006/07/30 02:27 Posted by 김조광수

데이트 가는 길에 왠 아줌마 겐세이?

어? 근데, 첨 보는 분인데?

나 바쁘단 말예요...

그렇지만 일단 공손하게 받는다.

"저 부르셨어요?"

"네, 초면에 실례지만, 저하고 얘기 좀 할까요?"

"저, 죄송하지만, 저를 아세요?"

"나, 석이(가명) 엄마에요." (녀석의 이름을 석이라 지었다. 임의로)

"네?"

뭐야? 석이 엄마?

전두환이 죽었다고 했어도 이렇게 놀랐을까?

뭐지? 뭐야? 어... 이러면 안 돼... 일단은 정신 차리자...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고딩을 사귀는 게 아닌데, 이를 어째?

그래도 일단은 정신부터 차리고... 그리고 우아하게...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알아요. 우리 석이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잠깐만 시간 좀 내줘요."

"네, 그럼 어디로..."

"문화당으로 가죠."

문화당이란다. 문화당.

녀석과 처음 문화당에서 만났는데, 녀석의 엄마와 문화당엘 간다.

 

주문한 빵과 우유가 나왔다.

슈크림빵도 있었지만 그게 목으로 넘어갈리가 없다.

난 우유만 홀짝거리고 있고, 석이 엄마는 말없이 내 얼굴을 뜯어 보고 있다.

대학 실기 시험 볼 때보다 더 긴장된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도 없고...

손에서도 땀이 난다.

석이가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녀석 엄마를 참 많이도 닮았다.

내가 여자 였어도 이 어머니 나를 만나러 오셨을까?

침착하자...침착하자...침착하자... 

 

"이렇게 만나 줘서 고마워요. 며칠 전에 석이에게 진우학생 얘기를 들었어요. 아니, 그 전에 버스에

서 가끔 마주치는 여학생이 있다고 맘에 드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상의한 적이 있었는데, 내

가 그럼 사귀어 보라고, 대신 엄마한테 가끔씩은 얘기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죠... "

석이 엄마, 긴장 하셨는지 말을 끊었다가 하신다.

"그리고 며칠 전에 진우 학생 얘기를 하더군요. 미안하지만 너무 놀랐어요. 우리 애도 놀랐다고...

자기도 고민 많이 했다고... 그런데 정말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솔직히 너무 놀라고 믿어지지 않

아서 석이에게는 그냥 알았다고, 공부 게을리 하지 말라고만 했어요. 내 말 이해하죠?"

이 분, 정말 고상한 분이시다.

당신 아들이 좋아한다는 남자 대학생을 만나서는 얼굴 붉히지 않으시고

때로, 내가 기분 상하지나 않는지 배려를 할 줄 아는 분이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면 석이도 정말 괜찮은 놈이겠다고 생각했다.

"난 우리 석이 생각만 할 거예요. 진우 학생은 대학생이고 그리고..."

"네,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죄송해요."

난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건, 석이 엄마에겐 죄송한 일이다.

"아니에요. 죄송하다고 하면 내가 더 미안해요. 하지만 진우 학생,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우리 석

이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요... 우리 석이는 아직 어리고, 예민한 나이라서... 석이 한테는 이런 말 못

할 것 같아요... 진우 학생, 진우 학생은 우리 석이보다는 어른이니까 내가 부탁 할게요. 우리 석이

그만 만나줘요."

석이 엄마, 정말 미안한 얼굴로 손수건만 만지작 거리신다.

이게 뭔가 싶다.

TV드라마의 단골 장면에 왜 내가 있어야 할까?

난 뭘 잘 못 했다고 좋아하는 슈크림빵도 못먹고 있고

석이 엄마는 또 왜 저래야 할까?

석이 엄마가 내 머리채를 잡지 않은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게다가 '진우 학생'이라는 호칭 때문에 더 미안해 진다.

에잇, 이름 사기 치는 게 아닌데 말이다.

이름 사기 때문에 2배는 더 미안해 진다.

 

시간만 흘러 간다.

석이 엄마는 어렵게 말을 꺼내시더니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셔서 나를 바짝 타게 하신다.

목이 타는데 이미 우유는 바닥을 드러 냈다.

이쯤에서 내가 져야 하는 것 같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그렇지만 석이를 한번은 만나야 할

거 같아요. 제가 석이에게 잘 얘기 할게요. 오늘 석이랑 약속했는데... 석이가 너무 기다릴 것 같아

요. 좀 늦었지만 얼른 가서..."

"석이 내가 심부름 보냈어요."

"네?"

"수원 고모님댁에 갔어요."

이런, 석이 엄마 꽤 치밀하신 분이구나.

"네... 그럼 다음에 만나서 제가 잘 얘기 할게요."

"그래요, 그럼 한번만 만난다고 약속해 줄 수 있죠?"

갑자기 밀어 부치시는 석이 엄마에게 나는 자꾸만 자꾸만 밀린다.

"네, 그렇게 할게요."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떨어진다.

눈물 한방울이 떨어지면서 갑자기 서럽다.

나도 모르게 서럽게 울어 버렸다.

석이 엄마도, 빵집에 있던 사람들도 서럽게 우는 나 때문에 당황할 테지만

난 그냥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은 아직 멈추지 않았지만 이 자리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이 엄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빵집을 나왔다.

다리가 아직 휘청거렸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다.

뛰어 가고 싶은데 맘처럼 발이 움직여 주질 않았다.

주저 앉고 싶은 맘도 들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최대한 빨리 걸었다.

언제 오셨는지 석이 엄마가 손수건을 내민다.

그리고는 "저, 진우 학생이 잘 애기 하겠지만 우리가 이런 얘기 한 거 석이에게는 얘기 안 했으면 좋

겠어요. 석이는 아직 어리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석이 엄마가 총총히 사라진 길에 주저 앉아 올려다 본 하늘은 너무 파랬다.

파란 하늘 아래 주저 앉은 내가 너무 가엽다고 생각했다.

또 눈물이 났다.

손에 쥔 석이 엄마의 손수건이 날 더 서럽게 한다.

그 자리에서 또 한참을 울었다.

 

그날 밤이었다.

집에 우울하게 처박혀 있다가 고등학교 친구 녀석이라도 만날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골목 끝에 그가 있었다. 화난 얼굴로.

"너 뭐야? 집에 있으면서 왜 안 나왔어? 지금까지 걱정 했는데... 나 화날려고 그래."

 

어? 무슨 소리야?

넌 수원 고모님댁에 간 거 아니었어?

 

"왜 말이 없어. 나 터미널에서 3시간 기다렸어."

우린 소요산에 가기로 했었다.

석이가 아침에 잠깐 어디 갔다 온다고 수유리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었고.

"어, 미안해. 나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그럼 나중에라도 말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해. 미안해."

녀석, 갑자기 나를 끌어 안는다.

"아냐, 아무 일 없으면 됐어. 내가 얼마나 걱정 했는지 넌 모를 거야... 그래도 이렇게 있으니까 됐

어... 내 옆에 있으니까 됐어."

날 안은 녀석의 팔에 힘이 들어 가고

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음 회에 계속

 

 

* 수영을 하고 갑자기 문화당 자리가 보고 싶어서 추억의 여행을 떠났다.

   문화당 자리는 맥도날드가 들어서 있었고,

   우리가 살던 집도 변해 있었지만

   몇몇 장소는 변하지 않고 마치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문화당이 있던 자리.
내 추억의 장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워라. ㅠ.ㅠ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 근처.

석이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삼거리.
오른쪽 불닭집이 우리가 살던 집이 있던 곳이다.

폴라포 먹고 있는 대문 사진 찍은 자리.
이곳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석이가 나를 안아 주었던 골목길.
이곳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뒤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 말고는.

석이가 살던 집도 찾아 보았다.
석이네 집 근처 목욕탕.
20여년 전 처럼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왠지 고맙다.

수도물 100%?
언제적 간판이길래. ㅎㅎ

햐~ 신기하게도 석이네 집은 그대로 있었다.
지금은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장독대가 힐끔 보인다.
석이 엄마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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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레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ㅠㅠ 아아 당시에 오빠가 상상이 가면서 감정 이입되네요 ㅠㅠ (저 위에 있는 사진 모습으로 상상하면 되나요? ㅠㅠ) 너무 안됐어요, 그 나이의 오빠도 그 학생도 ㅠㅠ
    +) 수유에 23년을 살았는데 수유리 터미널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어용 ㅠㅠ

    2006/07/30 10:33
  2. BlogIcon 피터팬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니 대문 사진 찍었을 때의 이야기가 맞네... 수유리 터미널은 조그만 거야. 지금의 수유역 근처. 없어진지 한참 되었지.

    2006/07/30 10:37
  3. BlogIcon 아물범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피터님~ 저 들렀다 갑니다. ^^

    2006/07/30 10:50
  4. BlogIcon 미리카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가슴아프네요.. 안타까워요..ㅜㅜ

    2006/07/30 20:38
  5. BlogIcon 퀴어블루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사진을 보니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 일어나는 일 같아요. 그 어머님 참 고상하신 분이라는데 동의! 드라마가 따로 없네요. 음...

    2006/07/31 03:23
  6. BlogIcon 다리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드라마도 좋지만 그 현장 탐사 사진이 더 절절해요... 거기에 개인들의 시간이 입혀지니..... 사진 한장으로 모든 이야기가 설명되듯이 .... 사진 화이팅 계속 탐사해주세요!!

    2006/07/31 08:28
  7. BlogIcon 바라보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유리 터미널은 지금도 있지 않나요..소요산 동두천행 시외버스 떠나는...길가의...

    2006/07/31 09:51
  8. BlogIcon 피터팬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유리터미널 아직 있어요? 난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 터미널에 얽힌 다른 로맨스가 또 있는데 그건 RCY 2년 후에요. 다음에 써 볼게요. 수유리 터미널도 찍으러 가야징!

    2006/07/31 10:43
  9. BlogIcon 폴오스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ㅠ 안타까워요 정말 ㅠ 어머님 정말 침착하시네요

    2006/07/31 10:49
  10. BlogIcon 후아유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까지... 점점 구체화되는 것은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와니와 준하가 생각나네요. 이상하게도...

    2006/07/31 13:54
  11. BlogIcon 피터팬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니와 준하>가 생각 난다? 무슨 뜻일까?

    2006/07/31 23:54
  12. BlogIcon 복숭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
    자잘한 것들이 다 같네요. 정말 머리가 띵 - 하지요 -_-;

    2006/08/01 01:22
  13. BlogIcon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요산 저도 가봤었는데..얼른 5회 부탁해요^^

    2006/08/01 08:09
  14. BlogIcon 리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동네가 저러케 지저분해써썽??
    굴구.... 건물도 마니 생긴거가토.......

    2006/08/01 08:38
  15. BlogIcon 피터팬  수정/삭제  댓글쓰기

    복숭아/ 비슷한 일이 있엇다구요? 에구, 남 일 같지 않네요.
    쭌 / 소요산은 언제 가봤어? 촌놈인 줄 알았더니... ㅋㅋ
    리즈 / 동네 분위기는 20년 전 그대로야.

    2006/08/01 17:07
  16. BlogIcon 시온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흑 눈물이 날거 같았어요... 사실 많이 기다린답니다 피터팬님 글

    2006/08/01 19:51
  17. BlogIcon kej9192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글읽다가 울었어요...너무...아..

    2006/09/17 15:56
  18. 개건곰  수정/삭제  댓글쓰기

    윽..으강....
    가슴을 울리는 아 이런

    2008/12/0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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